향신료의 낙원에서 한 입, 그리고 또 한 입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닷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발리의 향은 단순히 풍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골목마다 퍼지는 숯불 냄새, 시장을 가득 메운 향신료의 진한 내음, 그리고 식탁 위에서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코코넛의 고소함까지. 발리의 음식은 그 자체로 이 섬의 문화와 삶을 설명한다. 여행이란 결국 ‘먹는 이야기’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발리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여섯 가지 음식을 소개한다.
한 접시에 담긴 축제의 맛, 바비 굴링
발리의 향토 음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리는 단연 바비 굴링(Babi Guling)이다. 바비(Babi)는 돼지라는 뜻으로 바비 굴링은 어린 돼지를 통째로 굽는 통돼지 바비큐 요리다. 통돼지의 뱃속에 레몬그라스, 터메릭, 고추, 마늘 등 향신료와 허브를 가득 채운 뒤, 장작불에 천천히 구워낸다. 겉껍질이 바삭해질 정도로 구워 부위별로 밥과 함께 나오는데 보통 6~8가지 부위가 나와 조금씩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 그리고 진하게 배어든 향신료의 조화는 단순한 ‘돼지고기 요리’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전통적인 힌두 문화의 일환으로, 바비 굴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축제의 상징이자 공동체의 유산이다. 우붓의 이부 오카(Ibu Oka)는 그 대표주자로, 그곳에서 먹는 바비 굴링 한 접시는 여행자에게 발리의 맛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시킨다. 발리 여행 시 입 짧은 아이도 잘 먹어서 자주 시켰던 요리다.
다양함의 정수를 담은 발리의 밥상, 나시 짬뿌르
‘섞은 밥’이라는 뜻을 가진 나시 짬뿌르(Nasi Campur)는 발리의 식문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메뉴다. 흰쌀밥을 중심으로 닭고기, 템페, 삶은 계란, 채소볶음, 매콤한 소스, 바삭한 크래커 등 다양한 반찬들이 한 접시에 함께 담겨 우리나라의 백반을 연상시킨다. 조화롭고 균형 잡힌 구성은 보는 즐거움만큼이나 먹는 재미도 크다. 메뉴 구성은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덕분에 같은 나시 짬뿌르라도 매번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여행자에게는 '발리 음식 입문서' 같은 존재이며, 현지인들에게는 일상의 밥상 그 자체다.
숯불 향이 살아있는 길거리의 맛, 사테
사테(Sate)는 발리의 골목마다 퍼지는 구수한 숯불 향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심지어 해산물까지 다양한 재료를 꼬치에 꿰어 직화로 구워내며, 여기에 달콤한 땅콩소스나 짭조름한 간장소스를 곁들인다. 그리운 불향과 조화를 이루는 소스의 깊은 맛은 단출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복합적인 풍미를 선사한다. 해변가 노점이나 와룽(소규모 식당)에서 먹는 사테 한 꼬치는 발리 저녁의 풍경과 어우러져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인도네시아식 볶음면의 마성, 미 고랭
미 고렝(Mie Goreng)은 인도네시아식 볶음면으로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간장 베이스의 소스가 면발에 깊게 배어든다. 계란, 양배추, 당근, 닭고기나 새우 등 각종 재료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어느새 익숙하지만 이국적인 맛을 만들어낸다. 발리의 미 고렝은 ‘저렴한 한 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해변에서의 노을과 함께 혹은 숙소 베란다에서 바람을 맞으며 먹는 미 고렝 한 접시는 그 자체로 휴식이고 여행의 감각이다. 특히 아이들도 잘 먹는 메뉴로 가족 여행자들에게도 사랑받는다.
뜨끈한 위안이 필요한 날, 박소
박소(Bakso)는 인도네시아식 미트볼 수프로 속이 빈 듯 허한 날에 찾게 되는 따뜻한 국물 음식이다. 고기 완자는 입안에서 탱글탱글한 식감을 자랑하고, 국물은 맵거나 짜지 않아 속을 부드럽게 달래준다. 얇은 당면, 삶은 달걀, 부추, 튀긴 마늘 등을 얹어 한 그릇을 완성하는데 현지인들은 아침 식사로도 즐긴다. 발리에서는 이동식 푸드카트에서 컵에 담아 파는 박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휴양지의 열기 속에서 만나는 의외의 따스함이 여행자에게 은근한 위로가 되어준다.
여름의 마침표를 찍는 청량한 한 병, 빈탕 맥주
녹색 병에 붉은 별이 찍힌 로고, 이름만큼이나 인상적인 빈탕 맥주(Bintang Beer)는 발리를 대표하는 국민 맥주다. 톡 쏘는 청량감과 가벼운 바디감 덕분에 향신료가 강한 발리 음식과도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해 질 무렵, 노을에 물든 해변에서 빈탕 한 병을 들이켜면 그 순간만큼은 어떤 고급 와인보다 완벽하다. 특히 사테나 해산물 요리와 함께하면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씻어내며, 입안에 개운함을 남긴다. 낯선 나라의 하루를 마무리 짓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동반자가 있을까? 발리의 밤은, 빈탕과 함께여야 제맛이다.
발리의 맛은 단순히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문화와 일상, 공동체의 리듬이 스며 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그 한 입이, 당신의 여행을 조금 더 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