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이와 발리 한 달 살기 15〕 짐바란에서 끝맺은 우리 가족의 발리

by 이베트 2025. 7. 18.

발리 남부 울루와뚜 지역에 위치한 빠당빠당 비치
절벽 사이 바위 틈을 지나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빠당빠당 비치'

울루와뚜 사원과 빠당빠당 비치, 그리고 가족 여행의 변수

친정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정의 마지막 날, 클룩을 통해 10시간짜리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했다. 울루와뚜 사원, 빠당빠당 비치, 폴로 매장, 그리고 짐바란 해산물까지. 천천히, 하지만 알차게 발리를 마무리할 수 있는 코스로 일정을 짰다.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정오 무렵, 전날 함께했던 익숙한 가이드 아저씨와 다시 만났다. 익숙한 얼굴은 마음을 한결 느긋하게 만들어주었고, 오늘 하루도 무리 없이 흘러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첫 목적지는 울루와뚜 사원(Uluwatu Temple). 포악한 원숭이들로 악명 높은 곳이지만, 그런 우려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11세기에 지어진 이 사원은 지금까지도 남부 발리의 수호신처럼 여겨지는 힌두교 성지다. 'Ulu'는 ‘머리’, 'Watu'는 ‘바위’를 뜻하는데, 이름처럼 해발 70m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지어진 이 사원은 마치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검은 산호석으로 세워진 사원 아래로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저 멀리에서는 서퍼들이 파도를 타고 있다. 절경이라는 말, 아마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다만 이곳의 실질적인 주인은 원숭이들. 선글라스, 모자, 카메라 같은 물건은 단단히 챙겨야 한다. 선규는 처음엔 원숭이 구경에 신나 했지만, 금세 흥미를 잃고 찡그리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엔 늘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있지만, 그마저도 여행의 일부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빠당빠당 비치(Padang Padang Beach).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에 등장하며 유명해진 이곳은 ‘할리우드가 사랑한 비밀 비치’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발리 남부 울루와뚜 지역에 위치한 이 작은 해변은, 절벽 사이 바위 틈을 지나야 만 모습을 드러낸다.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부드러운 백사장, 그리고 자유롭게 서핑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풍경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작지만 고요한 이 해변은 ‘숨겨진 낙원’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계단을 제법 내려가야 했고, 해변의 규모도 생각보다 아담했다. 선규는 “발에 모래 묻기 싫다”며 해변 입구에서 단칼에 거부. 결국 바다는 발끝으로만 스쳐 지나갔고, 우리는 10분도 채 안 돼 차로 되돌아왔다. 이런 작고 엇갈린 순간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꺼낼 가족 여행의 한 페이지가 되겠지.

 

짐바란의 노을, 우리만의 마지막 만찬

시간이 조금 남아 폴로 매장에 들렀다. 발리에는 ‘POLO’ 브랜드를 내건 매장이 유독 많은데, 이는 대부분 인도네시아 현지 브랜드인 ‘POLO Ralph 1967’이나 ‘POLO by Ralph Lauren Indonesia’ 같은 라이선스 브랜드들이다. 정식 랄프 로렌과는 다르지만, 가격 대비 품질이 괜찮고 디자인도 깔끔해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단체 관광 루트에 자주 포함되다 보니, 이제는 하나의 관광 명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가볍게 쇼핑을 마친 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짐바란 씨푸드로 향했다. ‘짐바란 씨푸드란 특정한 식당 이름이 아니라, 짐바란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수십 개의 해산물 레스토랑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해 질 무렵, 해변 위에 펼쳐진 테이블과 의자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나의 노천 레스토랑처럼 변신한다. 붉은 노을이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고, 파도 소리와 함께 해산물 요리가 올라오면, 그저 식사를 하는 시간마저 특별한 경험이 된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하티쿠(Hatiku) 레스토랑'. 부드러운 모래 위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갓 구운 랍스터와 새우, 생선을 나눠 먹었다. 손끝에 닿는 소금기, 붉게 물든 바다, 그리고 부모님의 환한 웃음이 어우러진 이 순간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이었다. 얼마 전 들렀던 아야나 리조트의 키식 레스토랑보다 훨씬 맛있다며 부모님도 만족스러워하셨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그것은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이 여행을 완성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되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코코마트에 들러 선물을 고른 뒤, 공항으로 향했다. 친정 부모님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 그 길을 함께 배웅하고 싶었다. 뜨겁고 낯설며 때로는 우왕좌왕했던 발리의 날들이, 그렇게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마음에 남을 오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이 여정은 언젠가 다시 떠올려도 따뜻하게 웃을 수 있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머무를 한 장의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