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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발리 한 달 살기 13〕 코브라를 샀다, 아이스크림은 두 개 먹었다, 그리고… 핸드폰이 사라졌다

by 이베트 2025. 7. 18.

19세기 초에 지어진 우붓 왕궁 '푸리 사렌 아궁(Puri Saren Agung)'
코브라 공예품 쇼핑과 이발 후 잠깐 들렸던 우붓 왕궁. 기분이 좋아서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우붓 바버숍에서 머리는 잘랐고, 마음은 다잡았다

“오케이, 150,000 루피아요.”
상인이 마지막으로 부른 가격이다. 처음에는 무려 750,000 루피아. 한껏 올린 눈썹과 약간의 망설임 끝에, 나는 결국 나무로 깎은 코브라 조각상 하나를 구입했다. 혼자 갔으면 절대 안 샀을 테지만, 파충류를 좋아하는 선규가 고른 아이템이라 냉정하게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말도 안 되는 흥정의 차이를 웃으며 감당할 수 있는 건, 우붓 시장의 정겨운 열기 덕분이다.
우붓 시장(Pasar Ubud)은 발리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다. 오전에는 지역 주민들이 드나드는 진짜 로컬 마켓이지만, 오후부터는 장인의 손길이 깃든 기념품 천국으로 변신한다. 바틱 원단, 핸드메이드 장신구, 목공예품, 향신료, 그리고 돌로 조각된 힌두 신상까지.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딱이다. 물론, 흥정은 예의이자 의무. 처음 부르는 가격의 절반 이하부터 시작하는 게 불문율이다.

시장 쇼핑으로 기세가 오른 나는 우붓의 유명한 쇼핑 스폿 몇 군데를 더 들렀다. 첫 번째는 산사티아(Sansatia). 발리 자연주의 뷰티 브랜드 중 하나로, 립밤과 바디제품이 특히 유명하다. 코코넛 오일과 발리 허브를 조합한 립밤은 향도 좋고, 가볍게 선물용으로 사기 딱 좋다. 그리고 다음은 발리 티키 리빙(Bali Teaky Living)에 들렸다. 이곳은 발리의 트로피컬 감성을 담은 우드 키친웨어와 홈데코 아이템으로 유명하다. 나무 도마, 스푼, 서빙 트레이 등은 발리 여행자 사이에서 일명 ‘도마 성지’로 불릴 만큼 인기. 나도 도마 두 개와 스푼을 챙겼다. 집에 돌아가 요리를 할 때마다 이 날의 풍경이 떠오를 것 같아서.

쇼핑에 지친 몸과 입에는 디저트가 필요했다. 타키즈 코코넛 숍(Tukies Coconut Shop). 우붓에서 가장 유명한 코코넛 아이스크림 가게다. 코코넛 젤리, 땅콩, 구운 코코넛 칩이 토핑 된 아이스크림 한 스쿱은, 그야말로 ‘한 그릇의 발리’를 맛보는 기분이다. 선규와 나는 하나씩 시켰다. 그런데... 선규가 한 입 맛보더니 “안 먹어”란다. 그리하여, 두 개 다 내가 먹었다. 말갛고 찬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더위에 퍼지듯, 나의 위도 천천히 늘어났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선규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아이의 머리숱이 부쩍 무겁게 느껴졌다. 더운 날씨 탓인지, 덥수룩한 머리가 괜히 더 거슬렸다. ‘지금 자르면 딱이겠다’ 싶어, 곧바로 구글맵에 ‘Ubud barber’를 검색해, 왕궁 근처의 바버숍으로 향했다. 투어리스트보다는 로컬 손님이 많은 작고 소박한 바버숍. 
“최대한 짧게, 시원하게 잘라주세요!”
내 간절한 바람처럼, 선규의 머리는 한결 시원하게 정리됐다. 아이 얼굴이 훤히 드러나니 괜히 어른스러워 보여서 혼자 뭉클했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려던 순간.
“어? 내 핸드폰 어디 갔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꾸따에서는 벌에 쏘였고, 길리 T에서는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착각했던 나. 이쯤 되면 여행 삼연타 위기다. 이번에는 진짜 비상상황이었다. 연락, 예약, 모든 것이 이 작은 직사각형 안에 있었으니까. 호텔 프런트에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와 짐을 맡기고, 마지막 동선을 되짚었다. 바버숍, 아이스크림 가게, 상점들… "혹시 제 전화기 못 보셨나요?" 낯선 이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좌절감을 안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선규가 슬쩍 내민 무언가.
“엄마, 이거…”
그건 내 핸드폰이었다. 로비 테이블 위에 놓고 체크아웃에 정신 팔려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발리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나는 오늘 코브라를 사고, 아이스크림 두 개를 먹고, 바버숍에서 아이 머리를 자르고, 전화기를 잃어버릴 뻔 했다. 실수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행이란 늘 이런 것임을 다시 떠올렸다. 예상보다 낯설고, 때때로 아찔하지만, 끝내는 웃으며 이야기로 남게 되는 일들. 다음 여행엔 좀 더 침착하고 꼼꼼한 내가 되어 있을까?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코브라는 잘 샀고, 아이스크림은 두 개나 먹었고, 전화는 찾았다. 이쯤이면 꽤 괜찮은 하루 아닌가?

Tip. 아이도 즐겁고, 엄마 아빠도 만족스러운 발리 바버숍 3

1. 슬릭 바버숍 발리(Slick Barbershop Bali)

* Location: Jl. Sunset Road No.88, Seminyak
* 아이 친화도: ★★★★☆
* 추천 서비스: Kids Haircut, Father & Son 패키지
세미냑 중심의 세련된 바버숍으로, 내부가 넓고 쾌적하며 가족 단위 손님도 자주 찾는 곳. 아이 전용 의자와 귀여운 케이프도 준비돼 있어, 아이들이 긴장하지 않고 커트를 받을 수 있다. 바버들이 영어에 능숙하고 유쾌해서 낯선 환경에서도 아이가 편안해하는 분위기. 아빠와 아이가 함께 커트를 받을 수 있는 ‘Father & Son’ 스타일링도 인기.

2. BGS 바버숍(BGS Barbershop)
* Location: Jl. Pantai Batu Bolong No.63, Canggu
* 아이 친화도: ★★★☆☆
* 추천 서비스: Kids Cut with Organic Hair Products
서핑과 커피, 바버가 결합된 BGS는 짱구 스타일의 대표 바버숍. 외국인 가족 방문이 잦아 키즈 커트 경험도 많고, 친환경 유기농 제품만 사용하는 것이 장점. 아이 피부에 자극이 덜해 엄마 아빠의 걱정도 줄어든다. 매장 앞 작은 카페에서 기다리며 음료를 즐기기에도 좋아, 가족 여행자에게 알맞은 휴식 공간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3. 킹스맨 바버숍 우붓(Kingsman Barbershop Ubud) 
* Location: Jl. Raya Andong, Ubud
* 아이 친화도: ★★★★☆
* 추천 서비스: Quick Clean Kids Cut & Scalp Cooling
우붓 근교의 로컬 바버샵이지만 깔끔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현지 가족 고객이 많은 곳. 미리 “아이 머리를 자르러 왔다”고 하면 편안한 분위기로 잘 맞춰준다. 커트 후 스카프 쿨링까지 해주는 섬세한 서비스도 인상적. 우붓 여행 중 ‘아이 머리가 너무 덥수룩해 보여서’라는 이유로 방문해도 딱 알맞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