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바투르산으로 떠난 이유
밤이 깊어가던 새벽 2시. 우붓의 숙소에서 조심스레 알람을 끄고, 어둠 속을 더듬어 일어났다. 바투르산(Mount Batur) 일출을 보기 위한 하루가 이렇게 시작됐다. 클룩(Klook)을 통해 예약한 사륜구동 지프 일출 투어. 4인 기준 34만 원가량의 패키지로, 부모님을 위해 한국어 가이드가 포함된 상품을 골랐다. 이 투어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북동쪽, 바투르 화산 지대에서 일출을 감상하고, 인근의 검은 용암 지대를 탐험하는 ‘용암 어드벤처’까지 포함된 인기 코스다.
3시 정각, 약속한 기사님이 숙소 앞으로 도착했다. 여전히 짙게 깔린 어둠을 헤치고 2시간 가까이 북쪽으로 달려간 끝에, 해발 1,717m의 바투르산 기슭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미 지프 행렬로 가득했다. 마치 한밤의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수십 대의 지프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켜진 채로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사륜구동 지프에 올라타 드디어 산 위로 출발. 오프로드 특유의 덜컹거림이 온몸을 흔들었지만, 긴장과 설렘이 더 컸다. 바투르산은 발리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 중 하나로, 최근까지도 간헐적인 분화를 이어온 살아 있는 산이다. 일반 등산 코스와 달리 이 투어는 도보가 아닌 지프를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다.
산 중턱, 일출 명당으로 불리는 포인트에 도착했을 땐, 하늘이 여전히 칠흑 같았다. 하지만 이내, 어둠은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며, 구름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피어올랐다. 완벽하게 갠 날은 아니었지만, 땅 아래서부터 태양이 조용히 떠오르는 그 ‘기다림’의 순간은 오히려 더 특별했다. 언젠가 어렴풋이 꿈꿔왔던 화산 위의 일출. 그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서늘한 공기, 수증기로 안개 낀 능선들, 그리고 그 너머에서 피어나는 햇살. 절로 숨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었다.
바투르의 기억, 검은 용암 위에서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 다음 목적지는 '검은 용암 대지(Black Lava Field)'. 이름 그대로, 화산 분출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거대한 검은 지대다. 사륜구동 지프를 타고 깊숙이 들어갈수록, 풍경은 점점 낯설고 신비로워졌다. 잡풀이 드문, 마치 화성 같은 땅. 바투르산이 마지막 대규모 분출을 일으킨 1963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곳곳에 거칠게 뾰족하게 굳어버린 용암 바위들이 널려 있고, 바닥은 바삭 마른 현무암 조각들로 덮여 있다. 한참을 달리다 도착한 한 지점에서 지프가 멈췄다.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마치 외계 행성에 착륙한 듯한 기분이 밀려왔다. 황량하지만 기묘하게 아름다운 풍경. 아이처럼 용암 바위 틈을 뛰어다니던 선규는, 이 돌들이 공룡 피부 같다고 말했다. 정말로, 까맣고 울퉁불퉁한 그 형상은 백악기의 한 조각을 꺼내 놓은 듯했다.
가이드가 설명하길, 이 지역의 용암은 마그마가 급속히 식으며 형성된 것으로, 광물질의 조성에 따라 색과 결이 다르다고 한다. 일부는 붉은빛을 띠고, 일부는 진한 회색 또는 까만 유리질의 광택을 뿜는다. 고르지 못한 바닥 위를 지프가 달리는 동안, 몸은 덜컹였지만 마음은 벅찼다.
몸은 분명 피곤했지만,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깨어 있었다. 화산 위에서 해를 맞이하고, 불의 땅 위를 달리는 경험. 바투르산 일출 투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지구의 숨결과 마주하는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다. 돌아오는 길,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지프 속에서 부모님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 아침, 이 기억,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Tip. 바투르산 일출 & 검은 용암 대지 포토스폿 가이드
1. 지프가 만든 풍경, 새벽의 바투르산
수십 대의 지프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도열해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장면이다. 헤드라이트가 만든 빛줄기와 화산 능선의 실루엣이 어우러질 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사진이 완성된다.
2. 기다림의 미학, 화산 위 일출
새벽 5시 반에서 6시 사이,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카메라를 준비하자. 구름 사이로 올라오는 햇살을 배경으로 실루엣 컷을 찍거나, 가족과 함께 지프에 올라 인증 사을 남기면 잊을 수 없는 아침이 기록된다.
3. 마치 다른 행성, 검은 용암 지대
바투르 화산의 마지막 대분출이 만든 검은 용암 대지는 마치 외계의 풍경 같다. 뾰족하게 굳은 현무암과 바삭한 대지 위를 걷는 모습만으로도 특별한 프레임이 완성된다. 색 대비를 위해 밝은 옷을 입는 것도 좋은 팁.
4. 용암 위에서 만난 공룡의 흔적
아이와 함께라면 바위 위에서 공룡을 찾는 듯한 모습을 담아보자. 울퉁불퉁한 용암 바위와 아이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그 어떤 포토존보다 생생한 순간이 남는다. 아이의 시선으로 찍은 한 컷은 오래 기억된다.
5. 커피 한 잔, 여유 한 모금
투어 후 들르는 블랙 라바 커피 카페나 중간에 만나는 라마 농장은 여행의 감도를 낮춰주는 휴식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까만 땅을 배경으로 찍거나, 라마와 함께 찍는 소박한 컷도 소중한 기록이 된다.
6.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순간
지프가 검은 대지를 달릴 때, 바람과 함께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연사 기능을 켜고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옷자락, 웃고 있는 가족의 뒷모습을 담아보자.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이 최고의 컷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