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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발리 한 달 살기 11〕 친정 부모님이 발리에 오셨다

by 이베트 2025. 7. 15.

우붓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바비굴링 맛집 '와룽 바비굴링 판데 에기'
발리 전통 음식 '바비굴링'

비 내리는 발리에서 부모님과 함께

친정 부모님이 발리에 오셨다. 부모님이 오신 김에 호텔만 오가던 단조로운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어 숙소를 에어비앤비 굿 카르마 하우스(Good Karma House)로 옮겼다. 방 두 개에 인피니티 풀이 딸린 소박한 빌라였다. 번쩍이는 리조트급 럭셔리는 아니었지만, 잘 가꿔진 작은 정원과 풀장 너머로 보이는 논과 야자수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부모님 눈에는 조금 민박 같은 느낌이었나 보다. 마음만은 좋은 카르마를 담았지만, 다음 숙소는 좀 더 고급스러운 곳으로 모셔야겠다는 다짐을 살짝 해본다. 
하필 부모님이 오신 날 아침부터 발리에선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미리 쿨룩으로 예약해 둔 한국어 기사님이 숙소 앞으로 와주셨고, 일단 우붓의 대표 명소인 몽키포레스트(Monkey Forest)로 향했다. 우붓 중심부에 자리한 이곳은 수백 마리의 야생 원숭이가 신성한 힌두 사원과 숲 속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아가는 신기한 자연보호구역이다. 무성한 열대 식물과 고대 사원이 어우러져 아이들에게는 물론 어른에게도 원시림 속 작은 탐험 같은 느낌을 준다. 다만 비가 거세지면 원숭이들이 숲 깊숙이 숨어버리곤 한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빗방울이 굵어질수록 원숭이들은 모습을 감췄고, 우리는 풀잎만 축축이 젖힌 채 발걸음을 돌렸다. 
대신 가까운 우붓 왕궁(Ubud Palace)으로 향했다. 왕궁은 우붓을 통치하던 옛 왕족의 궁전으로, 화려하게 조각된 석문과 벽화, 붉은 벽돌과 황금빛 장식이 어우러져 발리 전통 건축미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 비가 오거나 잠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에 돌길은 미끄럽고 선규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졌다. 잔뜩 성이 난 선규를 달래며 왕궁을 빠져나와 근처 우붓 스타벅스로 몸을 피했다. 우붓 스타벅스는 발리 전통 양식과 모던한 인테리어가 섞여 있어 잠깐 쉬어가기 좋은데, 사실 숨은 하이라이트는 그 뒤편에 있다. 
스타벅스 테라스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작은 사원, 바로 따만 사라스와띠 사원(Pura Taman Saraswati)는 연꽃 연못 위에 떠 있는 듯한 신비로운 풍경으로 우붓 속 포토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예술과 학문의 여신 사라스와띠를 모신 이 사원은 꽃이 피는 계절이면 연못에 연분홍빛이 흐드러져 사진을 남기기에 더없이 좋다. 다행히 잠시 비가 잦아들자마자 가족사진을 몇 장 남길 수 있었다.

 

비 내린 우붓, 알라스하룸에서 바비굴링까지 

잠시 멎는 듯하던 비는 다시 흩뿌리고, 다음으로 간 곳은 우붓 북쪽 테갈랄랑 지역에 자리한 알라스하룸(Alas Harum). 테 갈랄랑은 발리에서도 손꼽히는 계단식 논뷰로 유명한 마을로, 드넓게 층층이 이어지는 논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팜트리가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만든다. 알라스하룸은 그중에서도 카페, 스윙, 전망대가 잘 조성돼 있어 논뷰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SNS에서 흔히 보는 ‘발리 스윙(Bali Swing)’에 올라 논 위를 나는 듯한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여행자들에게는 필수 코스 같은 곳이다. 하지만 흐린 하늘과 습기 어린 더위가 겹친 그날의 알라스하룸은 선규에게 그저 덥고 답답한 풀밭일 뿐이었다. 전망대에 앉아도 논은 멋진데 아이의 표정은 더 무거워졌고,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선규는 “수영하고 싶다!”며 마구 짜증을 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무심히 내리는 빗방울보다 더 깊이 마음을 적셨다.
결국 배부터 채우자는 생각에 찾은 곳은 우붓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바비굴링 맛집 ‘와룽 바비굴링 판데 에기(Warung Babi Guling Pande Egi)’. 발리 전통 음식인 바비굴링(Babi Guling)는 커다란 통돼지에 갖은 향신료를 가득 채운 뒤 통째로 구워내는 잔칫날 음식으로, 겉껍질은 바삭하고 안쪽 살은 부드럽고 육즙이 살아있어 발리를 찾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 꼭 맛보아야 할 별미다. 곳곳에 바비굴링를 파는 위룽이 있지만 이곳은 현지인들에게도 평이 좋아 한낮에도 금방 자리가 차는 곳이다. 다행히 바삭한 껍질과 따끈한 밥 한 숟가락에 부모님도, 울음을 멈춘 선규도 한결 표정이 풀렸다. 역시 좋은 음식은 늘 가족을 다시 웃게 만든다.
원래 계획에 있던 폭포 트래킹은 아쉽게 접고, 돌아가는 길에 발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현지 슈퍼인 코코마트(Coco Mart)에 잠시 들렀다. 코코마트는 발리 곳곳에 있는 로컬 편의 슈퍼마켓으로, 간단한 음료나 과일, 현지 과자, 필요한 생필품까지 한 번에 살 수 있어 장기 머무는 여행자들에게는 든든한 은인 같은 존재다. 간식과 음료를 챙겨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고, 선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피니티 풀로 풍덩 뛰어들었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마자 아이 얼굴엔 다시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오늘 하루 우붓은 비에 젖고 마음도 몇 번이나 흔들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조금 서툴러도, 계획이 틀어지고 아이가 울거나 짜증을 내도, 여행은 늘 예상 밖의 순간으로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기억나고,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더 오래 마음속에 스며드는 하루였다. 비에 젖은 우붓의 초록 풍경과 인피니티 풀 위에 번지는 선규의 웃음소리까지, 오늘의 작은 어긋남이 언젠가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될 것이다.

 

Tip. 현지인에게도 인기 만점! 발리 바비굴링 맛집

이부 오카(Ibu Oka)

우붓 몽키포레스트 바로 옆에 자리한 이부 오카는 ‘발리 바비굴링의 성지’라 불린다. 한때 발리 대통령도 다녀갔다고 알려져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고, 우붓을 찾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꼭 들르게 되는 필수 코스가 됐다. 숯불에 천천히 구워내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바비굴링 박 말렌(Babi Guling Pak Malen)
스미냑 선셋로드 한가운데 자리해 꾸따와 스미냑 사이 어디서든 들르기 좋다. 향신료 풍미가 비교적 덜하고 담백해 외국인 거주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라 언제 가도 손님이 북적인다. 발리 바비굴링이 처음이라면 부담 없이 도전해 볼 만한 입문자 맛집.

 

바비굴링 찬드라(Babi Guling Chandra)
덴파사르 구도심 한복판, 오래된 로컬 상가 사이에서 6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노포. 화려한 인테리어는 없지만 향신료를 듬뿍 넣어 진하게 구워낸 바비굴링은 현지인들에게 ‘어릴 적 엄마 밥’ 같은 맛으로 통한다. 점심시간이 지나기 전에 가지 않으면 금방 매진될 만큼 인기다.

와룽 바비굴링 사누르(Warung Babi Guling Sanur)
사누르 해변 골목 안쪽에 숨어 있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찾는 곳. 바비굴링에 갓 지은 밥과 삼발, 바나나잎 반찬을 곁들여 바닷바람에 식은 몸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조용한 사누르를 베이스캠프로 삼았다면 한 끼쯤은 꼭 들러봐야 할 ‘동네 밥집’ 같은 맛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