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 트라왕안 감성 일기, 바다와 노을 사이
아침 9시, 바닷바람이 느껴지는 이른 시간. 전날 밤, 호텔 로비에서 예약했던 ‘프라이빗 스노클링’ 투어가 시작되었다. ‘프라이빗’이라는 말에 괜스레 설레었던 마음은, 막상 가이드와 마주한 순간 현실이 되었고, 출발 전부터 뭔가 특별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출발지는 길리 트라왕간의 동쪽 해안. 섬에는 자동차가 없어 이동수단은 오직 자전거. 전날 삐걱이며 타던 자전거가 오늘은 조금 익숙해졌다. 선규를 뒤에 태우고 덜컹거리는 모래길을 따라 달렸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야자수 그림자가 바퀴 아래 흔들렸다. 잠든 듯 고요한 아침의 해안가엔 여전히 밤을 품은 듯한 적막이 감돌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한 조각의 기대를 안고 파란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배에 올라타자 정말로 우리 둘 뿐이었다. 말 그대로의 프라이빗. 잔잔한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작은 배 위에서, 파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다는 맑았다. 믿기 힘들 만큼 투명했다. 하늘이 그랬고, 바다도 그랬다. 고요한 물아래로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꿈처럼 떠다녔다.
처음 해보는 스노클링. 몸을 물에 맡기고 숨을 들이쉬는 것도 낯설었지만, 바닷속을 들여다본 순간, 모든 긴장감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마음속에 그렸던 환상은 조금씩 현실에 부딪혔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바다거북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내 만난 거북이는 깊은 바다 바닥에 붙은 채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꿈속을 떠도는 듯한 그 모습은 너무도 고요해서, 함께 헤엄친다는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는지, 가이드는 갑자기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한참을 잠수하더니, 자고 있는 거북이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우리 쪽으로 데려왔다. 순간, 바닷물이 고요히 갈라지고, 태양빛이 거북이의 등껍질 위로 반짝이며 퍼졌다. 그 장면은 마치 멈춰버린 시간 속 한 프레임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장면이었다. (물론 마음 한편에는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쳐갔지만.)
잔잔한 바다 위에서의 이 특별한 체험은 계획된 2시간보다 훨씬 짧게 끝났다. 선규는 금세 흥미를 잃었고,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 눈을 자꾸 비볐다. 결국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배를 돌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의외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스노클링이 아니라, 바닷가를 따라 자전거로 달리던 그 길이었다.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지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주한 섬의 풍경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서쪽 해안으로 향했다. 길리 트라왕간에서 꼭 봐야 한다는 '선셋 포인트'. 해가 지기 시작하며 바다는 금빛으로 물들었고, 사람들은 하나둘 해변 레스토랑 테이블과 빈백에 앉아 그 순간을 기다렸다. 우리도 그중 하나의 빈백에 자리 잡았다. 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앉은 자리에서, 바다 너머로 천천히 기울어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노을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온 세상을 조용히 감쌌다. 그 아래에서 먹는 간단한 저녁은, 어떤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특별했다. 바닷소리와 선선한 바람, 그리고 하루를 함께 보낸 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었다.
길리 트라왕간에서의 하루. 잊지 못할 건 바다도, 거북이도 아니었다. 자전거로 달리던 그 아침의 공기, 우리만의 리듬, 저녁의 햇살. 모든 장면이 감각처럼, 감정처럼 스며들어 남았다.
Tip. 추천 스노클링 스폿
1. 터틀 포인트(Turtle Point)
위치: 섬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해변에서 바로 입수할 수 있다.
특징: 바다거북을 만날 확률이 높으며, 조류를 따라 남쪽으로 드리프트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2. 할릭(Halik) 지역
위치: 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다이빙 포인트.
특징: 건강한 산호초와 다양한 해양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단, 조류가 강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3. 바이오록(Biorock) 지역
위치: 섬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인공 산호초 지역
특징: 다채로운 물고기와 바다거북을 볼 수 있으며, 보트 교통이 많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Tip. 길리 트라왕안 유명 선셋 스폿 Top 5
1. The Exile Bar
-서쪽 해안
-해변 빈백에 앉아 칵테일 한 잔과 함께 일몰을 즐길 수 있는 스폿.
-일몰 시간에는 보통 전통 악기 ‘붐붐(Bumbum)’ 연주가 함께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 특히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 사진 찍기 좋아 인생샷 명소로도 인기.
2. Sunset Swing at Ombak Sunset Hotel
-Hotel Ombak Sunset 앞 해변
-물 위에 설치된 그네에서 찍는 일몰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큰 인기를 끈 스폿.
-사진을 위해 줄을 설 정도로 유명하지만, 뷰 자체도 압도적이라 대기할 가치 있음.
-잔잔한 바다에 해가 떨어지며 반사되는 장면은 영화 같은 순간을 연출.
3. The Banyan Tree Sunset Spot
-섬 서쪽 중심 해변, Banyan Tree Café 부근
-해변의 큰 반얀 트리 아래서 느긋하게 일몰을 즐기기 좋음.
-바다를 향해 놓인 나무 벤치들이 있어 풍경에 집중하기 좋고, 한적한 편.
4. Casa Vintage Beach
-조용한 서쪽 해안가
-빈티지 감성의 비건 레스토랑이 함께 있어 로컬식 저녁과 일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모로코풍 쿠션과 해변 바닥에 놓인 러그가 감성적인 분위기를 더해줌.
-조용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원하는 커플에게 추천.
5. Malibu Beach Club
-서쪽 해안 북단
-모던한 비치 클럽 분위기 + 푹신한 선베드 + 디제잉 + 칵테일
-DJ 음악과 함께하는 파티 분위기의 선셋 타임. 젊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인기.
플러스 Tip
* 일몰 시간은 보통 오후 6시~6시 30분 사이, 여유 있게 5시쯤부터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 자전거로 이동하는 경우, 서쪽 해안까지는 약 15~20분 소요되니 시간 여유를 두자.
* 해가 지고 나면 금방 어두워지니 후레시 기능 있는 휴대폰 준비하면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