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 트라왕안, 기억은 햇살보다 뜨거워
길리 트라왕안 한낮의 태양은 잔인할 만큼 뜨거웠다. 그래서 오전 시간은 조용히 숙소 안에서 보내기로 했다. 바깥 세상이 숨 막히도록 타오르는 동안, 우리는 수영장 물속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파도 대신 찰랑이는 물소리, 바람 대신 적당히 시원한 물의 감촉. 방으로 돌아와서는 룸서비스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했다. 느긋한 이국의 아침이었다.
길리 트라왕안에서 꼭 해봐야 할 경험 중 하나는 바로 자전거로 섬 일주다. 섬이 워낙 작아 천천히 달려도 한 시간 반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도 그 여정에 꼭 동참하고 싶었다. 하얀 모래길, 바다를 끼고 달리는 오솔길, 남국의 자유가 가득 묻어나는 장면들. 그 모든 걸 눈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숙소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자전거는 모두 성인용. 우리 아이는 아직 두 발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뒷좌석이 달린 자전거를 따로 빌려야 했다. 아이를 태우고 페달을 밟으며 천천히 북쪽 해안을 따라 나섰다. 처음엔 들뜬 마음이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 펼쳐진 푸른 바다, 소박하고 정겨운 골목,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어주는 섬 사람들. 이 모든 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로맨스는 오래가지 않았다. 거친 자갈과 모래가 섞인 비포장 도로는 생각보다 험했고, 아이를 태우고 무게 중심이 흔들리는 자전거를 조심스레 몰아야 했다. 뺨을 때리는 햇살은 어느새 숨을 턱 막히게 했고, 등에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줄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 너무 더워.” 그리고 곧이어, “아빠 보고 싶어. 한국 가고 싶어…” 그 말에 순간 멘붕이 왔다. ‘지금 땀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 모는 건 엄마인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섬 일주의 야심찬 계획은 어느새 희미해졌고, 우리는 결국 숙소 근방 북쪽 지역만 살짝 도는 데 그쳤다. 불타는 듯 빨갛게 익은 얼굴, 욱신거리는 허벅지, 그 모든 것이 남은 여정의 흔적이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아이의 불평, 땀과 햇살, 삐걱이는 자전거 소리까지도 여행의 한 페이지였다. 그날 오후, 숙소로 돌아와 씻고 칠링한 화이트 와인을 느긋하게 마실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언제나, 힘들었던 순간보다 그걸 함께한 사람의 온기를 더 오래 품는다는 걸.
Tip. 길리 트라왕안의 핫 스팟 디테일 가이드
1. 터틀 포인트(Turtle Point)
-위치: 섬 북동쪽 해안
-추천 시간대: 오전 8시~11시 사이
길리 트라왕간을 대표하는 스노클링 명소. 바다거북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얕은 바다에서도 비교적 쉽게 거북이와 마주칠 수 있다. 바다에 들어서면 수정처럼 맑은 물 속으로 산호초가 펼쳐지고, 어쩌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느긋하게 헤엄치는 거북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영 실력이 부족해도 스노클링 장비만 있으면 접근 가능하며, 근처에 장비 대여소와 스노클링 투어 업체도 많다. 특히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자에게도 안전한 장소로 추천된다.
*여행 팁: 물때를 확인하고, 아침 시간대에 방문하면 혼잡하지 않고 시야도 맑다.
2. 선셋 포인트(Sunset Point)
-위치: 섬 서쪽 해안(Ombak Sunset Resort 인근)
-추천 시간대: 오후 5시~일몰 직후
이곳은 ‘길리 트라왕간’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상징적인 장소다. 붉게 물드는 하늘과 함께 롬복섬 뒤로 해가 천천히 가라앉는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선셋 타임에는 주변 바와 해변 카페가 모두 붐비기 시작하며, 쿠션과 빈백에 누워 칵테일을 즐기며 일몰을 감상하는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여행 팁: 인기 있는 자리들은 일찍 마감되므로 4시 30분쯤 미리 도착해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3. 길리 스윙(Gili Swing)
-위치: Ombak Sunset Resort 앞 바다
-추천 시간대: 밀물 타이밍(오후)
‘길리 트라왕간 인생샷 명소’로 가장 유명한 곳. 바닷속에 설치된 목재 그네가 물 위로 살짝 떠 있는 듯한 구도로 사진이 찍힌다. 특히 해 질 무렵 노을과 함께 촬영하면, 누구나 한 장쯤 꿈꾸는 여행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리조트 투숙객이 아니어도 접근 가능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여행 팁: 수위가 너무 낮은 간조 시간에는 ‘물 위 그네’ 느낌이 나지 않으므로 밀물 시간을 체크하고 방문할 것.
4. 자전거 일주(Cycling the Island)
-추천 소요 시간: 1~1.5시간
-렌탈 비용: 하루 약 50,000 루피아(한화 약 4,000원)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이 섬을 가장 효과적으로 탐험하는 방법은 단연 자전거다.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비교적 평탄하며, 길 중간중간 카페, 바닷가, 야자수 숲길이 이어진다. 동쪽은 활기찬 상점가와 레스토랑이, 북쪽은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이, 서쪽은 아름다운 일몰 스폿이 기다린다. 때로는 모래길이 있어 자전거를 끌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불편마저 여행의 낭만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여행 팁: 자전거에는 조명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해 질 무렵엔 일찍 숙소로 돌아오는 게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