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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발리 한 달 살기 01〕 첫 번째 여정지 꾸따

by 이베트 2025. 2. 27.

꾸따에서의 첫날밤
꾸따에서의 첫날밤. 이때까지만 해도 가성비 좋은 호텔을 잘 얻었다 생각했다.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꾸따, 우리에게도 천국이 될 수 있을까?

왜 하필 발리였을까?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시작이었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라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합리적인 비용. 게다가 ‘발리앓이’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마치 마법 같은 매력이 숨 쉬는 곳처럼 느껴졌다. “동남아인데, 동남아가 아니야. 한 번 가면 계속 가게 된다니까?”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호기심이 자극됐다. 신중하기보다는 즉흥적인 성향이 강한 나, ‘발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금세 ‘진짜 한 번 가볼까?’로 변했고, 결국 ‘아이의 긴 겨울방학, 나도 마침 시간이 나는데, 한 달쯤 살아볼까?’라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물론 고민도 있었다. 혼자서, 초등학교 1학년인 에너지 넘치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달 동안 발리에서 지낼 수 있을까? 하지만 망설이기엔 여행의 유혹이 더 강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는 순간, 모든 고민은 사그라들었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가벼운 설렘과 함께 1월의 발리행이 결정됐다. 

과연, 이곳은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첫 번째 여정지, 꾸따(Kuta)

여행 일정을 짜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첫 번째 도착지였다. 우붓(Ubud)의 푸른 숲이 끌렸고, 사누르(Sanur)의 조용한 해변도 눈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한국에서 오후 5시 40분에 출발하면, 발리 현지 시각으로는 자정을 넘어 도착하게 된다. 긴 비행 후 아이를 데리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꾸따.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단 15~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많은 여행자가 발리에 발을 내딛는 첫 번째 공간이자,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특히 꾸따는 ‘서퍼들의 천국’으로 불린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평범한 어촌 마을이었지만, 발리의 파도에 반한 서퍼들이 몰려들면서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길을 따라 서핑 스쿨, 숙소, 카페, 여행사들이 하나둘 자리 잡았고, 발리 전체가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꾸따 비치는 맑고 푸른 바다라기보다는 잔잔한 파도와 얕은 수심 덕분에 초보 서퍼들이 배우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해변 곳곳에 서핑 스쿨이 자리하고 있다. 단 몇 시간의 강습으로도 파도 위에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감. 한국 강사들이 운영하는 서핑 스쿨도 있어 언어 장벽 걱정도 없다. 아이가 흥미를 보이면 한 번쯤 도전해볼까 싶다.
그렇게, 우리의 한 달 살기는 꾸따에서 시작되었다.

 

꾸따 첫날밤, 불청객과의 조우

비행기가 발리에 닿고,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따뜻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남아 특유의 공기. 이국적인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래, 나 진짜 발리에 왔구나.’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찾아, 현지 유심을 사서 인터넷을 연결한 뒤 미리 예약한 택시를 탔다. 차창 밖으로 어두운 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오토바이들이 쏜살같이 달리고, 길가에는 밤늦도록 문을 연 노점들이 보였다. 도착한 첫 번째 숙소는 아고다에서 리뷰가 좋아 선택한 곳. 3박을 예약했고, 1박에 약 5만 원 정도. 소박하지만 깔끔한 객실, 예상보다 넓은 공간에 만족하며 아이를 씻긴 후 재웠다.
하지만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설렘, 그리고 살짝 스며드는 낯선 환경에 대한 긴장감.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시 짐 정리를 하려고 일어났는데, 문득 아이의 침대 머리맡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까만 그림자가 스르륵-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세상에나! 내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였다.
공포감에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울까 봐 꾹 참았다. 급히 무언가를 집어 들고 휘둘렀지만 녀석은 재빠르게 사라졌다. 이후로도 혹시 침대 위로 올라올까 봐 가슴을 졸이며 뒤척였다. ‘이건 아니야. 내일 당장 숙소를 옮기자.’ 불안감 속에서도 마음 한편엔 묘한 흥분이 차올랐다.
이 여행,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